자연에 가까운 삶에 대해.
얼마전 원숭이 세계에 대한 다큐를 재미있게 보았다. 난폭한 젊은 녀석이 왕을 몰아내고 새왕이 되었는데 왕이 되어서 제일 먼저 하려는 일이 왕의 암컷을 빼앗으려 든다. 우수한 암컷을 통해 자손을 번식시키려는 것은 자연의 세계에서는 당연한 본능이겠거니 했는데, 흥미로운 것은 그 다음이다. 왕의 암컷은 이미 왕과의 사이에서 두 쌍둥이를 낳았는데 새왕은 본능적으로 새끼가 있는 암컷은 교미에 무관심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어서 호시탐탐 쌍둥이의 목숨을 먼저 노린다. 늙은 왕은 새왕의 손아귀에서 쌍둥이와 암컷을 보호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지만 역부족... 결국 쌍둥이중 하나의 목숨을 새왕에게 빼앗기고 만다.

본능적인 삶에서 오는 불안과 공포. 자연 상태의 원숭이들의 사회는, 그들은 그것이 어떤 의미인지 잘 알지 못할 지언정, 분명 불안이 지배하고 있는 사회였다. 원숭이들은 악어와 표범으로부터 목숨을 위협받는 기본적인 불안 뿐만 아니라 제 아내와 자식을 힘 쎈 왕에게 빼앗길까 걱정하는 일종의 사회적인 불안마저도 일상으로 받아들이고 살아가는 불안한 존재였다.

어릴 적부터 방학마다 나를 시골로 보낸 어머니 덕인지 자연을 무척 즐기고 좋아한다. 한적하고 마음을 평온하게 만들어주는 시골의 풍경과 일상을 늘 동경하고 사랑한다. 그러나 그러한 자연을 사랑할 수 있는 까닭은 사람이 이미 공동체를 이루고 자연의 섭리에서 어느정도 독립할 수 있기 때문에 얻을 수 있는 사회적 동물로서의 인간이 가진 특권이라는 사실을 잊지는 않는다. 질서와 조화로 가득찬 자연을 유지하는 약육강식과 적자생존이라는 섭리를 우리는 이미 매우 '잔인'하고 '비인간적'인 섭리라고 부르지 않는가. (자본주의에 대한 강력한 비난 중의 하나는 자본주의가 이미 인간적인 범위를 넘어서 '유사자연상태'를 이루고 인간의 의지와 상관없이 질서와 조화를 통해 유지되어간다는 사실이다.)

국가나 제도로부터의 해방을 통해 인간다운 삶을 누리자고 하는 말에도 그 근거가 있음을 안다. 그러나 사람은 자연이면서도 이미 자연이 아니고자 하는 특이한 존재다. 약해도 밀려난 원숭이왕처럼 불안해하지 않을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사람의 특권이지 사회를 부정하고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이 사람의 특권은 아닐 것이다. 소박한 전원의 삶으로 돌아가자 하면서 바라는 것는 '자연상태'가 아니라 더 나은 '사회'다. 그리고 더 나은 사회는 약자도 강자를 불안해하지 않을 수 있는 자연의 섭리에서 가장 먼 사회다. 그렇다면 그러한 사회는 굳이 자연으로 돌아가지 않더라도 복잡하고 머리아픈 내가 살고 있는 바로 이 공간에서 구현할 수 있는, 그리고 해야만 하는 그런 사회일 것이다.

순수한 자연이야말로 어쩌면 에덴 동산일지 모른다. 자연에서 벗어나 사회를 구성하는 순간 우리는 선악과를 따먹고 자연에서 축출된 아담과 이브다. 그러나 우리는 아무것도 모르던 에덴동산으로 돌아갈 수 는 없다. 에덴의 바깥, 이 사회가 우리의 삶의 터전이고 땀흘려 일해야하는 곳이다. 어떻게 하면 다시 에덴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에덴이 아닌 곳에서 더 잘 살아갈 수 있는지를 고민해야하지 않을까.     
by Ondal | 2006/05/05 00:40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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